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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야생사과][2009/09/14]    
입 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져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 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 <삼킬 수 없는 것들> 중


나에게 있어 "허공"의 시인으로 각인된 나희덕 시인의 새 시집이 나온 것을 알아챈 것은
송이와의 교보문고 투어때였다.
11년째 그녀의 시로 주고 받은 편지만 수십통일 이 친구와
이 사과 한알같은 시집을 발견하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두 권을 집어들어 사이좋게 하나씩 나누어가졌다.

작년 소월문학상 수상집에서 그녀의 시를 오랜만에 접했을 때,
그녀의 허공과 삶의 지침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하여,
내심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크게 안도하기도 했었다.

그 시들을 포함하여 많은 새로운 시들이 담긴 이번 시집, [야생사과]에서
나는 오랜만에 그녀에 대한 spark 를 새로 만났다.
[어두워진다는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위력이다.


네 비참보다도
네 비참을 바라보는 나의 비참을 견딜 수 없어
내리친 것이 너의 뺨이었다니!
                                                   - <손바닥이 울리는 것은> 중


시집 끝머리의 평론을 보면
그녀는 이제 토해내는 것을 시작했다고 하기도 하고,
채우고, 흐르고, 지워져가기를 소망한다고도 했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허공의 시인으로 보인다


빗방울이 구름의 죽음이라는 걸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빗방울이 풀줄기를 타고 땅에 스며들어
죽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중략)

구름이 강물의 죽음이라는 걸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죽은 영혼을 어루만진 강물이
햇빛에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 <빗방울에 대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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