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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 카를로 마르티니, 무엇을 믿을 것인가[200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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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타주의, 성실, 정의, 남을 존중하기 등은 어째서 언제나 선이 됩니까?"
이런 질문은 내가 해결하지 못한 여러 질문 중 하나였는데
우연히 빌린 책이(이런 질문을 만났다는 자체만으로도) 도움을 주었다
의대도서관에 이런 종류의 책들이 무려 100번대 서가에 꽂혀있다
현대지성을 대변하는 에코와 종교인을 대변하는 마르티니 추기경의 (출판사의 소개에 따르면, 웃음)
종말과 희망, 생명의 근원, 윤리의 근거 같은 본질적이고, 정답이 없는 주제에 관한 서신토론을 다룬 책
앞의 주제들은 내 신앙에서 그닥 흔들리지 않는 부분이라 그냥 죽 읽었는데
이 마지막 주제는 '신앙적으로는 이유를 알 수 있으나' '내 것이라는 확신'은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추기경님이 이런 질문을 에코에게 던져준 것만으로도 굉장히 시원했는데
에코의 답들도 그러했다. (그가 던진 되물음을 포함하여)
책 내용을 - 그것도 소설도 아니고 인문사회학 책 내용을 - 죽 적는 것은 별로 내 취향은 아니지만
(사실, 이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너무 재미없는 글이 되기 쉽상이니까)
어쨌든, "나는" 이런 부분들이 특별히 도움이 되었다. 정도니까!
[비신앙인은 어디에서 선의 빛을 찾는가?] - 카를로 마르티니
어떤 인격신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도덕법칙들을 확언하고 공언하는 사람은 자기 행위에 어떠한 이유들을 부여합니까?.
어떤 절대자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서야 이러이러한 행동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수행해야 하는데
저러저러한 행동은 도저히 수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어떤 법칙들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 법칙들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기에 자기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걸까요?
종교는 도덕과 가치들과 윤리적 규범들이 나와 관련이 있고 없고를 떠나 [무조건적으로],
따라서 사회계층과 계급과 종족 따위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강제력을 행사하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명(明)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타주의, 성실, 정의, 남을 존중하기, 원수를 용서하기 등은 어째서 언제나 선이 됩니까?
또,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그 반대의 태도들을 선택하지 않아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엇이 이타주의이고 무엇이 이타주의가 아닌지를 확실하게 결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런 원칙들(인간의 존엄성에 호소하는 것이 윤리의 근간이 된다는 원칙)을 최종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자문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이 존엄한 까닭은 모두가 자기보다 더 높고 더 위대한 어떤 것을 향해 열려있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 그런 존재이기에 인간은 세계 내적인 조건에 제약되지 않을 수 있고, 이용되지 않을 권리가 완전하게 보장되는 것 아닐까요?
[타자가 등장할 때 윤리가 생긴다] - 움베르토 에코
우리는 직립 자세를 취하며 그 때문에 머리를 아래쪽에 두고는 오래 있기가 힘든 동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와 아래라는 공통의 개념을 가지고 있고, 아래보다 위를 우선으로 하는 성향을 보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좌우나 동정(動靜), 일어섬과 누움, 기기와 뛰기, 잠과 깨어있음 등의 개념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겐 제약에 대한 보편개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우리로 하여금 말하거나 보거나 듣거나 자지 못하게 하고, 삼키거나 토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즉, 우리는 무엇보다 타인의 육체에 관한 권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 권리에는 말할 권리와 생각할 권리도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자기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과 남이 자기에게 저러절한 일을 행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걸까요? 뿐만 아니라, 어떻게 남이 자기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행하면 안된다는 것까지 알게 되는 걸까요?
윤리의 차원은 타자(他者)가 등장함으로써 생겨납니다.
모든 규범은 도덕률이든 법률이든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제합니다.
우리를 규정하고 우리를 형성하는 것은 바로 타자이며 타자의 시선입니다.
먹지않거나 자지않고는 살 수 없듯이 우리는 타자의 시선과 응답이 없으면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한결같이 우리를 바라보지도 않고 마치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는 죽거나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어떤 문명들에서 학살과 식인 풍습과 타자의 육체에 대한 모욕을 용인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 문명들이 [야만족]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타자]의 개념을 부족 공동체 또는 민족에 국한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타자의 중요성을 의식하는 것만으로 윤리적 행동을 위한 절대적인 토대, 확고부동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가?
비신앙인은 자기의 목숨을 희생해야 할지도 모를 그런 무분별한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에코가 어느 공산주의자에게 한 질문)
'나는 죽기전에 시민장(葬)을 요구하고 있는 거야
그럼으로써 나는 이승에서 사라지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범을 남기게 되는거지'
이 대답에는 삶의 계속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절대적인 의무감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과연 근거가 확고한 불요불굴의 윤리를 정당화할 만큼 강력한 감정일까요?
거기에 바탕을 둔 윤리가 과연 계시된 도덕과 영혼의 생존과 상벌을 믿는 사람들의 윤리만큼 확고부동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자연적인 본능 (물론, 신앙인들에게는 이것 역시 하나님의 계획에서 나온 것이겠지만)은 자기의 올바른 성숙과 자아 의식에로 이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용서하는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을 권리를 비신앙인들에게서 박탈하려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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